에르프루트(Erfurt) - 마틴루터의 „정신적“ 고향.
이곳에서 마틴 루터의 학문적인 바탕이 형성되었다.
1501-1505 년 대학교육(자유칠과, 법학 그리고 이후 신학)
1505년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입회하여 수도사로 생활하였다.
1507년 카톨릭 사제서품을 받았고 이곳의 교회들에서 설교하였다.
중세의 도심이 가장 잘 보존된 독일 도시 중 하나로 도시의 상징인 마리엔성당과 세베리성당 그리고 많은 귀족들의 가옥들과 목골구조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루터가 입회하여 엄격한 규율에 따라 수도생활을 했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성당과 수도원은 그의 거주공간을 보존하고 있으며 전시와 만남, 회의 그리고 숙박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방문지
에어푸르트 구도심(마리엔성당, 세베리성당, 구 대학건물 등), 크레머다리, 페터스베르그 요새 등 „루터의 도시“ 아이스레벤(Eisleben) - 마틴루터(Martin Luther)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다.
만스펠드 분지의 구릉지역에 위치한 아이스레벤은 중요한 상업로의 교차지점에 위치한 유리한 여건과 주변의 구리광산을 바탕으로 번영한 도시로 하르츠산지와 엘베강 사이에 위치한 가장 오랜 도시중 하나이다. 루터의 아버지 한스 루터 역시 광산업에 종사하여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중세의 흔적을 간직한 시장광장과 시청, 궁전들과 부유한 시민들의 가옥은 루터시대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마틴루터는 이곳에서 1483년 11월 10일 태어났고 그의 생애의 마지막 3 주간 역시 이곳에서 보냈다.
방문지
시장광장과 구시가(루터기념비), 루터생가(루터의 가족과 탄생, 세례. 박물관), 성 페트리-파울리 성당(루터 세례식), 루터초상집(죽음에 대한 루터의 사상을 보여주는 박물관), 안드레아스 교회(루터의 마지막 설교와 첫 세례식) 등
„루터도시“ 비텐베르그(Wittenberg) - 종교개혁의 시작과 완성 엘베강변에 위치한 이 작은 도시는 1183년 처음으로 문서에 언급되었다(Wittenberg 은 "하얀산"을 의미). 선제후 프리드리히의 수도로서 그의 현명한 정책과 1502년 설립된 대학(Leucorea) 그리고 루터와 멜랑히톤을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의 중요한 활동으로 유럽의 정신적 중심지 중 하나로 발전하였다. 이곳에서 루터는 „자비로운 하나님“을 발견했고 카톨릭 교회의 부패와의 투쟁(„95개조 반박문“)을 시작했으며 아이제나흐의 바르트부르그(루터의 성서번역)의 피신생활을 마감한 후 이곳에서 35년 동안 종교개혁의 정착을 위해 헌신하였다. 비텐베르그에서 루터의 사상은 강의와 서적을 통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고 결국 그의 신학사상은 세상을 바꾸게 되었다. 비텐베르그는 종교개혁의 역사를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일종의 야외박물관이다. (1996년 이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방문지 쉴로스교회(루터의 ‚95개조 반박문’ 부착; 루터, 멜랑히톤, 선제후 프리드리히의 매장지), 마리엔교회(최초로 독일어 예배, 빵과 포도주의 형태로 성찬례거행), 비텐베르그 구대학 Leucorea(루터와 멜랑히톤의 강의장소), 루터하우스, 멜랑히톤하우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화가이며 루터의 초상화를 그렸던 크라나흐하우스 등 특히 루터하우스(Lutherhaus Wittenberg)는 의미가 깊은 곳이다. 이곳에서 루터는 수도사로 생활했고 1525년 이후 남편과 아버지로서 한 가정을 꾸려 살았으며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서적들을 저술하였다. 루터의 탑체험의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마틴루터 - 삶, 업적 그리고 영향“이라는 주제로 세계 최대규모의 종교개혁사 박물관을 소장하고 있다. 탁상담화의 장소인 소식당(Lutherstube)과 강의와 가족식사의 공간 대식당(Refektorium)이 흥미로우며 루터의 설교대, 수도사복장, 루터부부의 초상화, 면죄부함(Ablasstruhe), 루터성서, 95개조 반박문 등이 전시되어 있다. |